아라
유난히 무덥던 여름이 지난 지금. 나의 여름을 돌이켜 보면 6박 7일의 길다하면 길고 또 짧다하면 짧다할 매듭의 여름 건강현장활동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여름 건강현장활동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매듭에 계신 지인 한분을 통해서였다. 어떻게 보면 건활이 첫 나의 매듭 활동기가 된 것이다. 사실 처음 6박 7일의 캠프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많이 망설였었다. 의식주를 비롯한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잘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이러던 나에게 결정적으로 결심을 하게한 계기는 바로 캠프 전 준비모임 세미나였다. 매듭이 어떤 곳인지 또 건활에서 공부할 내용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운영요원 세미나에 같이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의 느낌? 아니 기억을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의료민영화와, 페미니즘, 보건의료에 대해 토론을 한 세미나였는데 그때 나의 느낌은 정말 "아~이게 진정한 토론이구나!" 하는 경탄과 "난 여태 모르는게 너무 많았던거 같아..."하는 충격 이 두 가지였다. 여태껏 나만 바라보던 이기적인 나의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고 또이렇게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과 사회문제들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세미나는 나의 망설임을 일시에 잠재운 후 반대로 건활에 대한 기대로 나를 한껏 들뜨게 하였다.
8월 4일 드디어 건활 첫날이 밝았다.
50여명의 새로운 사람과 함께 시작을 앞둔 첫 모임장소에 들어설 때는 많이 떨렸었다. 첫날은 일주일간의 공동생활을 앞두고 친목도모, 경직된 사고의 틀을 깰 수 있는 인권놀이, 공공생활의 규칙선정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모임장소에 들어서고 함께 똑같은 하늘색 티셔츠를 나눠입으니 단결심이라고?할까 하나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처음 만나 알아가는데 있어 나는 매듭의 소개방식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을 소개할 때 이름, 나이, 학교, 학과등을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첫 소개에서부터 사람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수직적 관계를 형성하게 한다는 경직성이 갖는다. 그래서 매듭에서는 첫 소개 때 나이나 학교 학과가 아닌 이름, 자신이 좋아하는거, 또는 싫어하는것 등 그 사람의 외면적이 모습이 아닌 내면을 바라보게끔 하는 소개를 하였다. 이와 같은 소개 때문인지 사람들과 좀 더 편하게 가까워 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가지 단점?이자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어 가끔 재미난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8월 5,6일은 철거촌 프로그램이었다.
처음 철거촌이란 말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무섭기도 하고 거부감마저 들었었다. 그렇게 재건축 지역으로 지정되어 세입자들의 투쟁이 진행중인 정금마을을 찾게 되었다. 처음 마을을 들어설 때 길가에 쭉 주민분들이 둘러 서서 박수를 쳐 주셨다. 환한 미소로 맞아주시는 모습에 두려움은 사라지고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철거촌을 가서 직접 주민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 전에 나는 '재건축과 재계발 모두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인데 왜? 잘못된 것일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자본만을 위한 시장 논리적 계발로 실재로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소수민들을 거리로 내모는 정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주민분들과의 간담회와 강연등을 통해 현재 실상황과 그분들의 입장을 이해 할 수 있었다. 피켓제작과 벽화제작들을 통해 이분들과 한 소리를 낼 수도 있었다. 철거촌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역 앞 선전전이었는데 안타까운 현실과 진실을 알리기 위해 목청 높이는 우리들의 앞에 제각각 바쁜 걸음만 제촉하고 곱지 않은 시선마저 주는 시민들을 보며 지난 나의 모습을 많이 반성케 하였다.
8월 7일은 서울대로 이동하여 노동권 강연과 비정규직 세미나 그리고 실재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고 계신 서울대학교 여러 노조 분들과의 간담회를 하였다. 비정규직이라는 말은 여러번 들어봤지만 실재 그런 일에 종사하고 계신 여러 분들을 만나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나는 이때 간병인 노조 간담회에 참석하였다. 40~50대 중후반의 어머니 같은 분들이 생계의 책임을 떠맡은 어려운 상황에서 유일하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간병인'이라는 직업. 그 실상은 참으로 놀라웠다. 일주일간 24시간 근무, 하지만 시간당 2,040원 이라는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 무지막지한 해고통보를 일삼는 비인간적인 병원, 80%정도는 모두 근육계통의 병을 얻게 된다는 힘든 병간호,, 간병인의 현실은 참으로 열악하고 서글펐다. 컴퓨터나 신문 등 매체를 통해서 아닌 그 분들을 직접 만나 뵙고 전해들은 이야기라서 인지 더욱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나에겐 7일간의 건활 중 이때 간담회가 가장 기억에 남고 인상적이였다.
8월 8,9,10일은 새만금의 갯벌 배움터 '그레'에 머물게 되었다.
'새만금 간척사업'이라 하면 모두들 한번쯤 학교 교과서?를 통해 들어봤을 내용이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토지의 효율적 이용과 국토확장을 위한 대규모의 간척사업' 나 또한 이런 책을 통해 새만금 간척사업은 우리 국민과 국토개발을 위한 효율적인 사업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갯벌을 막아 염해 식물들을 가득심어 놓은 간척지 위를 직접 걸으며 그곳은 개발의 땅이 아니라 죽음의 땅이란 걸 깨달았다. 무엇과도 바꿔놓을 수 없는 갯벌을 달콤한 속임에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며 눈시울을 붉히시는 주민분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하는 질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 새만금 프로그램이었다.
건활을 통해 소수민을 몰아내는 도시개발,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 환경파괴를 일삼는 간척사업 모두 현 시대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그늘 아래 생겨난 것이라는 공통점을 찾게 되었다. 이런 현실의 문제에 한발 더 가까이 또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듭과 건활이었다. 건활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마디로 건활을 소개하자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세상과 나와의 진실한 소통","머리에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새겨지는 활동"이라고 말이다. 지난 건활을 통해 비로소 나는 세상속에 하나의 존재로서 나를 찾을 수 있었다.



